ERA를 넘어서: FIP와 LIPS의 탄생 배경
전통적으로 투수를 평가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지표는 평균자책점(ERA)이다. 그러나 ERA는 투수 본인의 능력만을 반영하지 않고, 수비 실책, 내야 안타, 수비 위치, 심지어 구장 특성까지 포함한 결과 지표다. 이런 외부 요인들은 투수의 실력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며, 운에 따라 과대 혹은 과소 평가될 위험이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이다. FIP는 투수 본인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삼진, 볼넷, 몸에 맞는 공, 홈런만을 기준으로 투수 성적을 재계산한 지표다. 즉, 수비나 BABIP 같은 운 요소를 배제하고 투수가 실제로 던진 공의 질과 성과만을 반영한다. FIP는 일반적으로 ERA와 유사한 스케일로 구성되어 있어, ERA와 비교하면 운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FIP도 완벽한 수치는 아니다. 예를 들어 FIP는 모든 삼진이나 홈런에 동일한 가중치를 부여하고, 투수의 구종 유형이나 피칭 환경, 상대 타선의 질적 수준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고급 지표가 바로 **LIPS (Luck Independent Pitching Statistics)**이다. LIPS는 FIP보다 더 정밀하게 ‘운’을 배제한 수치로, 실제 경기 상황에서 투수의 능력과 상관없는 결과를 제거하고, 순수한 실력 기반의 기대 성적을 제시한다.
FIP와 LIPS의 구조적 차이점은 무엇인가?
FIP는 삼진, 볼넷, 몸에 맞는 공, 홈런이라는 네 가지 요소만을 활용해 계산된다. 공식은 비교적 단순하며, 이들 요소에 각각의 가중치를 곱한 뒤 평균 조정값을 더해 ERA와 비슷한 수치로 나타낸다. FIP의 장점은 간결성과 실용성이다. 실제로 많은 구단이 스카우팅이나 연봉 조정 과정에서 ERA보다 FIP를 더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LIPS는 그보다 더 진보된 방식으로 계산된다. LIPS는 단순히 투수가 통제 가능한 결과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각 타석마다 발생 가능한 결과들의 ‘예상값’을 적용해 운의 개입 가능성을 정밀하게 조정한다. 예를 들어 한 타자가 강한 타구를 날렸지만 외야수 정면으로 갔다면, 이는 실점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투수에게 불리한 컨택이었기 때문에 LIPS에서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계산된다.
또한 LIPS는 타구의 속도, 각도, 스프레이 차트(타구 방향), 리그 평균 BABIP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투수의 진짜 피칭 능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를 모델링한다. 즉, LIPS는 단순히 ‘결과’를 보지 않고, 그 결과가 나올 확률과 투수의 개입 가능성까지 통계적으로 반영하는 고급 지표다.
FIP는 ‘결과 기반 독립 지표’이고, LIPS는 ‘결과 가능성 기반 기대 지표’라고 정의할 수 있다. FIP가 “투수가 직접 만든 결과만 보자”는 접근이라면, LIPS는 “그 결과가 정말 투수 때문인지, 운인지, 환경인지를 따져 보자”는 고차원적 접근이다. 이 때문에 LIPS는 계산이 복잡하고 공개 자료가 적지만, 정확한 실력 분석에 있어서는 FIP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사례: LIPS와 FIP가 다른 경우, 그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나?
실제 경기 데이터를 살펴보면, FIP와 LIPS가 큰 차이를 보이는 투수들이 있다. 이 차이는 단순히 계산 방식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 투수가 겪은 운과 환경의 극단적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예를 들어, 어떤 투수가 시즌 평균자책점 2.80, FIP 3.10을 기록했다면 일반적인 해석은 “운이 조금 좋았다”일 수 있다. 그런데 그 투수의 LIPS가 3.80이라면 이는 더 심각한 차이를 의미한다. 이 경우는 실제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며, BABIP가 비정상적으로 낮았거나, 수비 도움을 과도하게 받았거나, 혹은 상대 타자의 운이 나빴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ERA 4.50, FIP 4.00, LIPS 3.30인 투수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운이 매우 나빠서 실제 성적보다 훨씬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리그 평균 이상의 투수였을 가능성이 높다. 구단은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 FA 시장에서 가성비 좋은 투수를 발굴하거나, 재계약 여부를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KBO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피칭 추세를 보면, ERA보다 FIP가 항상 높거나 낮은 투수들이 있다. 이 경우는 경기 환경이나 수비력 차이가 원인일 수 있으며, 일부 투수는 실질적인 제구나 구위보다 팀 수비에 의존한 결과로 낮은 ERA를 기록한 경우도 존재한다. FIP로는 잡히지 않는 구장 요인, 타구질 등을 반영하기 위해 LIPS나 유사 지표를 도입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FIP와 LIPS의 차이는 단순한 계산 방식의 차이를 넘어, 선수 평가, 계약 전략, 그리고 야구 분석의 정밀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FIP와 LIPS를 활용한 투수 해석 가이드
야구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팬이나 분석가는 단순히 ERA로 투수의 능력을 판단하지 않는다. FIP를 보면 그 투수가 수비 없이도 어떤 성적을 기록했을지를 알 수 있고, LIPS까지 살펴보면 해당 결과가 얼마나 실력 기반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지표는 서로 보완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FIP는 데이터 접근성과 간결성 덕분에 빠른 비교와 판단에 유용한 수치다. 반면 LIPS는 전문적인 분석에 적합하며, FA 시장에서의 가치 예측, 선수 성장 곡선 판단, 부상 후 회복 추세 확인 등에서 더 강력한 분석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선수 평가에 있어 현실과 기대치의 간극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지표이므로, 구단의 전력 분석팀은 FIP와 LIPS를 함께 참고해야 한다.
팬 입장에서도 ERA와 FIP만 비교하는 것보다, LIPS까지 함께 보는 눈을 갖는다면 해당 투수의 성적이 진짜 실력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결과인지 판단할 수 있는 분석적 시선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경기 해설이나 기사 해석에서도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결국 LIPS와 FIP는 ERA를 넘어선 투수 평가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한 중요한 수치다. 두 지표 모두 ‘운’을 배제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지만, FIP는 결과 중심의 투수 통제 지표, LIPS는 기대 중심의 순수 실력 예측 지표로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이 두 지표를 적절히 활용하면, 야구는 더욱 정교하고 과학적인 스포츠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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