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

KBO와 MLB에서 FIP가 말하는 의미는 어떻게 다를까?

FIP란 무엇인가: ERA를 넘어선 투수력의 새로운 기준

야구에서 투수의 성적을 대표하는 전통적인 지표는 평균자책점, 즉 ERA다. ERA는 투수가 9이닝을 던졌을 때 얼마나 많은 자책점을 허용했는지를 수치화한 것이다. 그러나 ERA는 투수 혼자 만든 결과가 아니라 수비의 도움, 실책, 야수의 수비 위치, 심지어 구장의 크기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에, 투수의 진짜 실력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현대 야구에서는 투수의 순수한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FIP라는 지표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KBO와 MLB에서 FIP가 말하는 의미

 

FIP는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의 약자로, 말 그대로 수비와 관계없이 투수의 독립적인 퍼포먼스를 측정하는 지표다. FIP는 볼넷, 삼진, 피홈런, 사구처럼 투수만의 결과로 결정되는 요소만을 계산해 수치화한다. 이를 통해 투수가 ‘실제로 얼마나 잘 던졌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ERA가 2.50인데 FIP가 4.20이라면, 그 투수는 수비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실질적인 퍼포먼스는 그보다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ERA보다 FIP가 낮은 경우는 불운하거나 수비 실책 등에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FIP는 투수의 운과 외부 요인을 제거한 실력 지표로서 매우 유용하다.

 

KBO에서의 FIP 해석, 투수 환경의 제약과 그 의미

KBO 리그에서 FIP는 점차 널리 활용되고 있는 지표지만, MLB에 비해서는 아직 팬층이나 해설에서의 인식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리그 내부, 특히 구단 프런트와 데이터 분석 부서에서는 FIP를 매우 중요한 투수 평가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KBO는 수비 실책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야수의 수비 범위나 기본기가 MLB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에, ERA만으로는 투수의 능력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이때 FIP는 수비력을 배제한 투수의 순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각광받는다.

예를 들어 특정 투수가 9이닝당 2.80의 ERA를 기록하고 있지만 FIP는 3.90으로 나올 수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피홈런이 많거나 볼넷 비율이 높아 장기적으로 ERA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ERA는 4.50인데 FIP는 3.30인 경우, 그 투수는 불운하거나 수비의 도움을 덜 받아 실제로는 더 좋은 투수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KBO 구단 중 일부는 외국인 투수를 영입할 때 ERA보다 FIP, K9, BB9, HR9 같은 세부 수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KBO는 MLB보다 구장 크기가 작고, 투수와 타자의 경기 환경 격차가 크지 않다. 특히 공식구의 반발력이 시즌마다 달라지면서 피홈런률의 급격한 변화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런 환경에서는 FIP가 시즌 간 일관성을 갖기 어렵고, 맥락 없이 수치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결국 KBO에서 FIP는 투수의 퍼포먼스를 판단하는 유용한 기준이지만, 리그 특성과 함께 해석해야만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MLB에서의 FIP 활용, 투수 능력 평가의 핵심 도구

MLB에서는 FIP가 이미 투수력 평가의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았다. 이는 MLB의 리그 특성과도 관련이 깊다. 메이저리그는 야수들의 수비력이 매우 뛰어나고, 수비 위치 선정과 시프트가 고도화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ERA는 수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따라서 MLB 구단들은 투수를 평가할 때 FIP, xFIP, SIERA 같은 수비 독립적 지표를 통해 진짜 실력을 분석한다.

FIP는 또한 계약 협상이나 트레이드, 유망주 육성 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예를 들어 ERA가 낮지만 FIP가 높은 투수는 향후 성적 하락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높은 연봉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ERA는 다소 높지만 FIP가 낮은 투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평가된 자산'으로 간주되어 영입 우선순위에 오르기도 한다.

2023년 MLB에서 사이영상 후보로 꼽혔던 게릿 콜과 잭 갤런의 사례를 보면 이 지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콜은 ERA보다 FIP가 낮아 실질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투수였다는 분석이 있었고, 실제로 경기 내용도 이를 뒷받침했다. 반면 갤런은 ERA는 좋았지만 FIP가 다소 높은 편이어서, 향후 성적 유지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MLB에서는 FIP 수치 하나로 선수의 미래 가치, 트레이드 매물 여부, 연봉 수준까지 달라질 수 있다.

 

FIP의 해석 차이와 야구를 보는 새로운 눈

KBO와 MLB에서 FIP는 동일한 공식을 사용하지만, 해석의 방식과 수치가 갖는 실제 의미는 매우 다르다. KBO에서는 투수력이 아직까지도 실점 중심, ERA 중심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강하고, 수비 수준이 일정치 않아 FIP와 ERA 사이의 격차가 클 수 있다. 반면 MLB에서는 수비 수준이 일정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투수 분류 체계가 발달해 FIP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두 리그에서 동일한 FIP 수치를 기록한 투수라도 그 의미와 해석, 그리고 리그 내 가치 평가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KBO에서 FIP 3.50을 기록한 투수는 리그 상위권에 해당하며, 대부분의 팀에서 선발 로테이션 중심 자원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MLB에서 동일한 FIP 수치는 대체로 3선발 혹은 4선발 수준에 해당하며, 리그 상위권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이는 리그 전반의 타격 수준, 경기 운영 방식, 투수 기용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FIP는 투수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준다. 단순히 몇 점을 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삼진을 잡았고, 볼넷은 줄였으며, 피홈런을 억제했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이는 야구를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으로 보는 관점으로 전환시키며, 팬들의 시선 또한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앞으로는 KBO에서도 FIP를 포함한 고급 지표가 보다 보편화되면서, 투수 평가의 방식이 ERA 중심에서 점차 벗어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