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와 MLB의 WAR, 같은 수치의 함정
야구 팬들 사이에서 WAR라는 수치는 선수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널리 사용된다. WAR는 Wins Above Replacement의 약자로, 대체 선수보다 얼마나 더 많은 승리를 기여했는지를 수치화한 것이다. 이 수치는 단순한 타율이나 홈런 수보다 더 입체적으로 선수를 평가할 수 있게 해주며, 최근에는 구단의 전력분석팀은 물론 팬들과 언론까지도 WAR 수치를 기준으로 선수를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기 쉬운 점이 있다. WAR는 단일 기준으로 계산되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KBO 리그와 MLB 리그에서 동일한 WAR 수치가 나왔을 때, 그것이 실제로 같은 가치를 의미하는지는 다시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KBO에서 5.0 WAR를 기록했고, 또 다른 선수가 MLB에서 동일하게 5.0 WAR를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두 선수의 경기력, 기여도, 시장 가치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리그 수준, 계산 방식, 환경, 대체 선수의 수준 등 다양한 변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WAR 계산 방식과 리그 환경의 차이
우선 WAR는 계산 방식 자체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대표적인 WAR 계산 방식에는 Fangraphs의 fWAR, Baseball-Reference의 bWAR, 그리고 Baseball Prospectus의 WARP 등이 있다. KBO에서는 스탯티즈, 케이비리포트, 야구기록실 같은 플랫폼에서 자체 알고리즘을 적용한 WAR를 제공하고 있다. 각 플랫폼마다 수비 기여도의 측정 방식, 주루 기여 반영 여부, 포지션 가치의 차등 계산법이 다르며, 대체 선수의 기준 자체도 다르게 설정된다.
또한 리그 환경 역시 WAR 수치에 큰 영향을 준다. MLB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인 리그이며, 투수들의 구속이나 타자의 파워, 수비 범위 모두 평균 수준이 매우 높다. 반면 KBO는 상대적으로 좁은 야구장, 낮은 투수 평균 구속, 그리고 전략 중심의 경기 운영이 특징이다. 이러한 리그 간의 환경 차이는 WAR 수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수비 기여도를 측정할 때 MLB에서는 UZR이나 OAA 같은 첨단 지표들이 도입되지만, KBO는 이 정도의 시스템과 데이터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수비 성과가 다소 왜곡되거나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같은 5.0 WAR라 해도 계산에 포함된 요소나 가중치의 배분이 전혀 다르다.
KBO와 MLB WAR의 의미 차이
WAR가 리그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리그 내 평균 수준의 차이 때문이다. KBO에서는 대체 선수의 수준이 MLB보다 낮게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기본적인 선수 풀 자체의 평균 기량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성과라도 리그별로 기여도의 크기가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KBO에서 5.0 WAR를 기록한 선수는 리그 정상급 선수로 간주되지만, MLB에서는 5.0 WAR는 스타급이긴 해도 꼭 최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KBO는 시즌당 144경기, MLB는 162경기 체제로 운영된다. 이 차이는 누적 스탯을 기반으로 계산되는 WAR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MLB에서의 WAR는 장기적인 시즌 흐름 속에서 성과가 분산되는 반면, KBO에서는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냈을 경우 WAR가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 또한 MLB는 선수 개개인의 출전 시간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고, 대체 선수 투입도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WAR가 안정적으로 누적되기 어렵다.
이러한 리그 환경의 차이는 단순히 수치만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팬들 사이에서는 종종 "KBO에서 6.0 WAR 찍었으니 MLB에서도 통하겠네"라는 식의 해석이 오가지만, 이는 WAR 수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KBO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외국인 타자가 MLB 복귀 후 대체 선수 수준에 머무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반대로 MLB에서의 커리어가 끝난 듯 보였던 선수가 KBO에서는 리그를 지배하는 케이스도 많다.
WAR 수치의 활용, 그 한계를 인식하자
WAR는 분명히 유용한 지표다. 전통적인 타율이나 타점, 홈런 수치만으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선수의 다면적인 기여도를 수치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이버메트릭스 시대의 핵심 도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WAR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그 수치가 생성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서로 다른 리그 간의 WAR 비교는 극도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KBO WAR 7.0과 MLB WAR 7.0은 절대로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대체 선수 기준, 경기 수, 경기 환경, 계산 방식에 의해 도출된 숫자다. 또한 WAR는 정량적 지표이기 때문에 선수의 리더십, 클러치 상황에서의 집중력, 팀워크, 팬 서비스 같은 정성적인 요소를 반영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야구 팬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단순히 숫자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WAR는 야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 끝은 아니다. 데이터의 시대이지만, 데이터의 해석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WAR 수치를 절대적인 지표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되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과 한계, 그리고 리그 간의 차이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진정한 야구 팬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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